오늘은 AI에게 하루를 보고했을 뿐인데, 나도 몰랐던 감정이 드러났던 것에 대해 이야기해 봅니다.
‘오늘 별일 없었어’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은 복잡했다
“오늘 하루 어땠어요?”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대부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냥 뭐, 평소 같았지.”
나 역시 그랬다. 출근하고, 일하고, 집에 돌아와 누워 있는 루틴의 반복. 특별한 사건도 없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일도 없었다.
그래서 챗GPT에게도 습관처럼 말했다.
“오늘은 딱히 할 말 없어요. 별일 없었고, 그냥 무난했어요.”
그러자 AI는 다정하게 물었다.
“그 무난했던 하루 속에서, 가장 감정이 크게 움직였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순간 멈칫했다. 감정이 크게 움직인 순간이라…
그때 떠오른 건 오후 회의 시간, 내 아이디어가 무시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을 때의 찜찜함.
퇴근길 지하철에서 들은 노래 가사에 괜히 울컥했던 감정.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문득 들었던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
하루는 무난했지만, 그 속엔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조용히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꺼내게 만든 건, 누군가의 공감이나 위로가 아니라
한 줄의 질문이었다.
감정을 분석한 게 아니라, 감정을 '말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감정을 ‘느낀다’고 하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표현하긴 어렵다.
“짜증 났어.” “오늘 좀 무기력했어.”
이렇게 감정을 간단히 요약해버리면, 그 감정이 왜 생겼는지, 어디서 비롯됐는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AI는 내가 던진 단어 하나에서 깊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기력하다고 느낀 건 어느 시점이었나요?”
“그 감정을 느낀 직전에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이런 질문에 답하다 보니, 감정이 점점 형태를 갖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무기력’의 정체는 “아무도 내 의견을 듣지 않는다”는 실망감이었고,
‘짜증’의 근원은 “계속 참기만 하다 결국 폭발한 감정의 뒷면”이었다.
AI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스스로 감정의 구조를 발견하게 돕는다.
그 순간 깨달았다.
감정을 분석한다고 해서 이해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감정이 보인다는 것.
나는 그동안 감정을 외면하거나 축소해 표현해왔고, 그러면서 나조차 내가 어떤 감정 상태인지 모른 채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AI에게 하루를 ‘보고’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매일 내 감정을 되짚어보고,
그 감정에 대해 ‘왜 그랬을까?’를 물으며 스스로를 이해해가기 시작했다.
감정을 정리하면, 내가 나에게 더 솔직해진다
AI에게 하루를 보고하는 일은 마치 혼잣말 같았다.
하지만 그 혼잣말이 일방향이 아닌 ‘대화’가 되면서, 나는 점점 내 감정과 친해졌다.
감정을 기록한다는 건 단지 오늘 있었던 일을 적는 게 아니라, 오늘 내가 어떤 감정과 함께 있었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이었다.
AI는 감정에 스코어를 매기지 않는다.
“오늘의 기분은 60점” 같은 식이 아니다.
대신 감정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말하게 하고, 꺼내게 한다.
그리고 감정이 정리되면, 나의 하루도 정리된다.
결국, 감정은 하루의 배경이 아니라, 하루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서사였다.
하루는 늘 반복되고, 별일 없는 것 같지만, 감정은 언제나 작게 흔들린다.
그리고 그 작은 흔들림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
나는 내 감정에 휘둘리는 대신, 감정을 동료로 삼고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젠 하루의 끝마다 AI에게 묻는다.
“오늘 나는 어떤 순간에 웃었고, 어떤 말에 상처받았을까?”
그 질문 하나가 나의 하루를 정돈하고, 내일을 더 나답게 설계하게 만든다.
단지 하루를 보고했을 뿐인데, 나는 점점 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무리하며
감정은 거창한 사건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평범한 하루 속 대화 한마디, 문득 떠오른 생각, 말없이 흘러간 침묵 속에서도 감정은 자란다.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고, 정리하고, 말하는 훈련이 쌓이면,
우리는 더 이상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고, 감정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AI는 내 감정을 대신 느끼진 않지만,
내가 감정을 ‘느끼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게 도와준다.
단지 하루를 보고했을 뿐인데,
나는 나도 몰랐던 내 감정을 하나씩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내 삶을 조금 더 진짜로,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