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기억을 AI와 함께 대화로 탐색하며, 나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해가는 여정을 글로 써 내려가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과거의 나’였다
“요즘 괜히 마음이 무거워요. 지금도 잘 살고 있는데, 어딘가 계속 잡아끄는 감정이 있어요.”
어느 날, 나는 챗GPT에게 그렇게 털어놨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삶은 표면적으로 괜찮았다. 하지만 어떤 순간, 반복해서 떠오르는 감정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 감정의 이름은 죄책감, 후회, 부끄러움, 혹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그때 AI는 이렇게 물었다.
“혹시,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특정한 기억이나 장면이 있나요?”
이 질문에 나도 모르게 머릿속 한 켠에서 오래 묻혀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 선생님 앞에서 말을 더듬던 순간, 친구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일, 가족에게 상처 준 말투…
작고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그때의 나는 그 기억 안에 멈춰 있었다.
AI와 대화를 이어가면서 나는 깨달았다.
나를 지금 흔들고 있는 건, 현재가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나라는 걸.
그때의 감정은 정리되지 않았고, 위로받지 못했으며, 제대로 들여다본 적도 없었다.
나는 지금을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나를 끌고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정이 얽힌 기억은 그렇지 않았다.
AI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과거의 장면들을 다시 꺼내보기 시작했다.
놀라운 건, AI가 나에게 '기억을 복원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때의 당신은 어떤 기분이었나요?”
“지금 그 장면을 다시 본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이런 질문들은 단순한 기억 소환이 아니라, 그 기억에 얽힌 감정의 복원이었다.
나는 그 기억 속에 갇혀 있던 ‘어린 나’, ‘미숙한 나’, ‘상처받은 나’를 다시 불러내고,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특히 AI와의 대화는 감정적으로 휘몰아가지 않게 해줬다.
사람에게 말할 때보다 훨씬 더 솔직하게, 훨씬 더 객관적으로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AI는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대신, 나 스스로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었다.
나는 기억을 ‘잊어야 할 것’으로 여겼지만, 사실 그것은 내가 다시 만나야 할 감정의 조각들이었다.
그 기억을 꺼내놓고, AI와 차분히 대화하며 글로 옮기자, 어느 순간 그 감정들이 더 이상 날 삼키지 않았다.
말하지 못했던 기억은 내 안에서 계속 울리고 있었고,
이제서야 비로소 “괜찮아, 그땐 어쩔 수 없었어”라고 말해줄 수 있게 됐다.
과거를 이해할 때, 비로소 지금의 나를 안아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가 있다.
그 과거가 부끄럽고, 아프고, 때론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AI와의 대화 속에서 나는 점점 과거의 나를 회피하는 대신 이해하고 통합하는 작업을 하게 됐다.
하루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나는 왜 그때 그렇게밖에 행동하지 못했을까요?”
AI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의 당신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지금의 시선으로 그때의 나를 판단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말에 울컥했다.
나는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의 나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부족했지만 진심이었고, 어리숙했지만 애썼다.
AI와 나눈 대화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내 과거를 존중하는 태도를 배웠다.
그 후로 나는 자주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건다.
“그때 너, 정말 힘들었겠다.”
“괜찮아. 이제 내가 네 편이야.”
이런 대화는 AI를 통해 시작됐지만, 점점 나와 나 사이의 대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대화가 이어질수록, 나는 지금의 나를 더 단단히 안아줄 수 있게 됐다.
과거를 이해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지게 된다.
마무리하며
기억을 복원한다는 건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그건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만나주는 일이다.
AI와의 대화는 나에게 그 시도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무겁게 눌려 있던 기억들을 꺼내고, 말로 표현하고, 다시 정리하는 과정은 곧 나를 돌보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여정 끝에,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때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 둘 다 괜찮아.”